그릇된 신념은 많은 경우 재앙을 부른다. 이를테면 이 사회의 많은 부모들이 가진 문제점중 가장 큰 것은 [자식의 행복]에 대한 그릇된 신념이 너무도 확고하게 뿌리를 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스스로도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쓰는것만이 행복의 전부라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 넘쳐나고, 그래서 우리나라의 교육은 가장 기본이 되는 가정에서부터 확실하게 실패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확고한, 그릇된 신념을 토대로 그들은 그들의 자녀들을 가르친다. 얘야,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거라. 닥치고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또 공부하고 또 공부해서, 사자 돌림 직업을 가지고, 돈을 많이 벌고, 남들 앞에서 큰소리 떵떵 치게 되면 행복하게 살 수 있단다. 그리고 그들이 믿는 그 [유일한 행복] 이외의 것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근데 그게 대단히 재미있는 이유는, 그렇게 살아서 진정한 행복을 찾았다는 이들의 이야기는 좀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당연하다. 그것은 결국 끝없는 곁눈질이 만들어낸 신기루고 환상일 뿐이므로. 끝없는 곁눈질. 3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놈은 40평짜리 아파트에 사는 놈을 흘끔흘끔. 소나타를 타는 놈은 벤츠 타는 놈을 흘끔흘끔. 돈 많은 놈은 권력 있는 놈을 흘끔흘끔. 무덤에 들어갈때까지 그 흘끔흘끔을 반복하다가 눈을 감을 때쯤에야 내가 무엇을 보고 있었던거지? 라는 허탈한 중얼거림을 흘리게 되는 사람들. [저놈은 행복할거야] 란 허무맹랑한 확신들속에 쌓아올린 모래성인 것이다. 정말 그들이 행복한지 행복하지 않은지는 그들밖에 모른다. 어쩌면 남들에게 기죽기 싫어서 [나는 행복하다]라고 가장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제는 그 허무맹랑한 확신들이 어느 세대에서 멈추거나 깨져나가는 기색이 없이 계속 대물림되고 있다는 것이다. 야야, 울 아버지도 그랬고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랬고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도 그랬어, 너라고 별 수 있을 것 같아? 라는 설득력없는 체념들이.
부모가 되보지 않고서는 부모의 마음을 모르니, 섣불리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적어도 나는 이런 것들에 대한 생각만큼은 확고하다. 만약 언젠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게 된다면 나는 참 많은 이야기를 해줄 것이다. 말보다 글로 풀어내는 것이 쉬운 인간이니 매일, 혹은 한주에 한번씩 아이가 글자를 깨우치게 된 후부터 편지를 써주게 될지도 모르겠다. 나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아주 많이 나누고 싶다. 아빠는 행복해지려고 이렇게 저렇게 해봤었는데, 이런 것들에선 이런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고 저런 것들에선 저런 행복들을 느낄 수 있었어. 너는 어떨 때 행복하니. 어떤 것들을 하면 행복할 것 같니. 이런 것들은 어떨까. 아빠는 네가 어떻게 해야 행복할지 가르쳐줄 수 없어. 그건 아빠도 여전히 찾아가고 있는 중이거든. 아빠의 행복을. 또 다른 행복을, 즐거움을, 기쁨들을. 그러니 너도 스스로 찾아야해. 그건 네 몫이야. 너만의 행복을 찾아가야해. 어떠한 것들로 어떠한 행복을 누리던간에 응원해주마. 이런 이야기들을 해줄것이다. 절대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가르치려고 들지 않을 것이다. 나는 부모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찌질이 스머프들을 키우고 싶진 않단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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